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 (문단 편집) === 프로니아 제도 === 이렇게 중기 제국 군사 제도가 붕괴하고 콤니노스 왕조 치하에서는 군사력의 [[봉건제|봉건화]]가 진행된다. 농민 위주로 편성되었던 테마 제도와는 달리 중소 귀족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병력을 제공받거나 수세권을 부여하는 대신, 직업 군인을 고용하는 [[프로니아 제도]](Πρόνοια)가 나타났다. [[프로니아 제도]]는 '''원칙적으로는''' 토지의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서구의 봉건제와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세습되었다. 황제들은 프로니아의 반란이나 이탈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콤니노스 가문이 지배하던 시기와 앙겔로스 가문까지는 봉건화가 절정으로 치달은 시기로 여겨진다. 4차 십자군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후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이후에는 당시 니케아 제국의 역량으로 제국 전 영역을 커버할 군사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자 용병의 중요성이 더욱 늘어났다. 과도한 군사력 지출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군사 제도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결국 멸망을 맞게 된다. 다만 직업 군인은 자신의 토지가 복잡하게 여러 군데 떨어져 있었기에 국가 행정 조직의 도움을 받아야 자신의 토지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특별히 공을 세우거나 아들이 아비의 직업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토지를 세습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경우 세습은 쉽지 않았다. 프로니아 제도가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고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프로니아 제도는 제국의 몰락을 최대한 막았으며, 프로니아 제도로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의 위기가 제국을 몰락시켰다고 보고 있다. 오스만이 제국 대부분을 잠식하여 제국 영토가 고립되고 흩어진 상태에서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오스만과 협상하려하는데 황자 하나는 테살로니키에서 오스만군을 막고 있고 황자 하나는 모레아에서 4차 십자군의 잔당들과 마찰을 빚는 상황이 와버린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